본문 바로가기
[한달어스] Handal.us/[한달독서] 11기

[Day 3] 자존감 수업 - 03

by Aterilio (Jeongmee) 2020. 12. 18.

 언제부터일까. 사람들에게 '자존감'이라는 단어는 더이상 낯설지 않다.

 

 나도 언제 어디서 그 단어를 처음 듣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듣자마자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 '물리적으로 숨 쉬는 것이 아니라, 정말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이라고 정의내렸던 것의 이름이 바로 그 '자존감'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정보가 폭발하면서 우리는 고유의 정체성조차 비교당하고 산다. 내가 하는 생각, 살아가는 과정, 판단, 결과 들도 비교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그럭저럭 잘 살고 있는 사람들조차 마음 한구석에 '내가 정말 잘 살고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을 안고 살아간다.
 이런 환경은 자존감에 큰 영향을 미친다. 끊임없이 비교하며 열등감을 조장하고, 내 환경을 원망하게 하고, 내 성격이 이상한지 자꾸 점검하게 한다. 답을 찾기도 쉽지 않다. 뭔가 문제가 있다고 느끼지만 고민할 시간은 부족하고 점점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되면서 떨어진 자존감은 방치되기 일쑤다.

- 자존감 수업 中

 읽었던 부분 중 가장 공감가는 문장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정확히는 3학년 쯤. 내 기억에 그 때는 딱히 책을 많이 읽었던 것 같지도 않고, 충격적인 사건은 한 번 있었으나 나 자신에게 직접적인 것은 아닌, 그저 그 뿐인 시기였는데도. 왜인지 친구한테 그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살아있다고 느끼고 싶다. 숨만 쉬고 있는 거 말고.'

 

 그런 말이었을까? 정확한 어구는 기억나지 않지만, 요지는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 그런 것에 크게 무게를 두고 있었다는 것이다. 벌써 20년도 지난 일인데, 그 때의 그 막막한 마음은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화두는 내 성장기를 관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다 못해 중학생만 되었더라도, 책이나 TV 등 간접경험을 통해 그런 생각을 했을 법도 하다고 생각했을텐데. 아주 어릴 때부터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다.

 

 인상 깊던 문장으로 돌아오면, 무엇과 비교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문장을 읽으며 나 또한 계속해서 무언가를 비교하고 있었다는 것을 떠올렸다는 것이다.

 

 무엇을 계속 염두에 두었었는지, 그게 어디로부터 기원하였는지 전혀 기억에 없지만, 나는 어떠한 뚜렷한 삶의 모습을 상정하고 그것을 계속해서 현실과 비교했다. 마치 도덕책을 진리 삼아 '거짓말은 하면 안되는데..', '쓰레기는 버리면 안되는데..' 하고 생각하면서, 그것을 어기는 사람을 보면 견딜 수 없어 하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그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내용이 바로 '삶은 주체적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리적인 살아있음이 아닌' 진짜 살아있음을 바란다는 건 그런 의미였다. '스스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주체성.

 나는 누군가의 어떠한 목적으로 인해 살아있는 것이 아니고, 누군가가 원하는 어떠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살아있는 것이 아니기를 바랬던.

 그리고, 그것은 말하자면 '뭔가 문제가 있다고 느끼지만 고민할 시간은 부족하고 점점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되면서 떨어진 자존감은 방치되는' 그런 상황들이었다. 그게 내 마음의 공허를 만들어냈다. 자존감을 채울 수 없으니 타인이 어떤 행동을 해도 그 공백이 채워질리가 없었다. 한 때는 어리석게도 그것이 타인으로부터 채워질 줄 알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 느리지만 자연스럽게 홀로서기를 하고 있는 지금에야, 그렇게 무겁던 마음 속 돌덩이가 크게 신경쓰이지 않게 되어 비로소 조금 마음의 여유는 가지게 된 것 같지만. 지금도 가만히 나를 들여다 볼 때면 여전히 마음이 다소 무겁다는 것을 부정하진 못 한다.

 

 나를 비추어 볼 때, 자존감 형성에 외부의 환경이 미치는 영향이 전부가 아닐지라도, 영향이 적다고는 할 수 없는 것 같다. 비유하자면 외부의 환경은 자존감을 채우는 '도로'의 네비게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네비게이션이 막히지 않는 길을 잘 알려주어야 우리는 목적지에 빨리 도착할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 네비게이션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우리는 도로의 정체에 한참을 묶여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언젠가 목적지에 도착하긴 하겠지만 그게 언제일지 알 수는 없는.

 

 하지만 한편으로, 고등학교 때 학교 교지에 실린 내 글이 생각난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어두운 모습의 나'를 공개적으로 밝힌 꼴이 된 그 때.

 

 "우리는 모두 '인생'이라는 길을 걷고 있다. 같은 길이의 길을 걷더라도 모든 길의 모습과 상태는 다를 수 밖에 없다. 당신이 걸은 그 길이, 내 길과 같으리라 보장할 수 없다. 그러므로 당신이 걸어온 그 길보다 쉽다고 단정하지 마라."

 

 사실, 이 글귀의 '당신' 이라는 존재는 앞뒤 문맥 상 어른들, 그 중에서도 특히 각자의 부모님을 지칭하고 있었고, 덕분인지 평소 그렇게 친하지 않던 아이들도 공감을 표해서 당황스러웠지만. 적어도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외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나의 이야기일 뿐, 모두가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