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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어스] Handal.us/[한달독서] 11기

[Day 4] 자존감 수업 - 04

by Aterilio (Jeongmee) 2020. 12. 19.

 

 나는 특정한 사건 이후로 자존감이 낮아졌다고 생각해왔다.

 

 게임아카데미, 마지막 프로젝트. 의사소통에서 누군가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게 서툴다는 것을 자각하고, 그것을 개선하고 싶어서 애쓰는 시기였다. 그래서 나는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팀장에게 얘기를 꺼냈다.

 '혹시 문제가 있다면 얘기해주세요. 제가 자각하지 못할 때도 있더라고요.'

 진짜 그 말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뒤로, 그 사람의 언행은 지나치게 공격적이었다. 심지어 같이 팀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꽤 연장자인 오빠조차, '난 너 중간에 나갈 줄 알았다. 잘 버텼다' 라고 할 정도였다. 웹 개발로 사회생활을 꽤 하던 오빠가 그럴 정도였으면 오죽했을까.

 

 한번은, 더운 여름 점심 식사 후에 있던 일이었다. 날도 더우니 맥도날드 아이스크림 콘이나 먹으러 가자는 얘기가 나왔다. 에어컨도 시원한 곳에서 500원하던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휴식을 취하는 건 꽤 달콤한 제안이었다. 팀원들 모두가 찬성했고, 아이스크림을 받아 자리에 앉아 가볍게 얘기를 나누려던 때. 누군가 휴가 얘기를 꺼냈다. 그래서 나는 '아, 저도 여행가고 싶어요. 어디 놀러가는 거 말고 쉬는 여행이요~' 그런 말을 했었는데, 곧바로 팀장이 반박을 했다. '야, 안그러고 싶은 사람도 있냐?' 그리고 그 예의 연장자인 오빠가 비슷한 어조로, '아~ 쉬는 여행 좋지! 나도 그런거 가고 싶다!' 라고 말을 하니까, '아~ 그렇죠 형님? 역시 쉬는게 최고죠'.

 

 그런 식이었다. 내가 꺼낸 말은 프로젝트에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만 말한 것이었는데, 마치 면죄부를 받은 양 공격적인 언행이 되돌아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분위기를 수습하고자 그 오빠가 다시 말을 꺼낸 것 같지만. 당시에는 그저 벙쪘을 뿐이었다. '뭐야, 나한테만 왜이래?'

 

 한편으론, 내가 맡은 부분이 진척이 되지 않았을 시기이기도 했다. Direct X 에서의 폰트 캐싱... 캐싱. 이론은 알겠는데, 자료가 없다. 입력한 글자들을 어떤 식으로 캐싱을 해야 하는지 감도 안 오고, 구글링은 열심히 해보지만 결과가 안 나온다. 그게 대략 일주일 정도 지속됐다. 일적으로도 궁지에 몰린 것이다. 그것은 또한 상대에게 공격할 빌미를 준 것이기도 했다. 업무 쪽으로도, 그 외적으로도 지속적으로 공격적인 대응에 노출되는 데다가, 심지어 일은 실제로 진행이 안되고 있으니 일정 부분 공감까지 되서, 그게 더 괴로웠고 자괴감만 깊어졌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업무 쪽으로 한번 나를 신뢰하지 못하자, 좀처럼 다시 믿을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게 계속해서 자괴감을, 낮은 자존감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내가 자꾸 자존감이라는 단어를 되새김질 한 때는 그때부터였다. 자존감을 채우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어서 막연했다. 차라리 시험이라도 있어서 그걸로 점수를 매긴다면, 모자란 부분이 있다면 채우고 당당해질 수 있을텐데, 그것도 아니고... 그런 생각을 계속 해왔다.

 

 오늘,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첫째. 나는 말하자면 스스로 땅을 파는 스타일이다. 능력이 없어 보이기보단 다소 무리한 요구라도, 심지어 나를 갈아서라도 달성하려고 한다. 못하는 것을 못한다고 해야하는데, 일단 할 수 있을지 없을지 판단하는 것도 어렵거니와, 못한다는 걸 못한다고 말하는게 무능력하다는 것을 보이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둘째. 내 낮은 자존감은 거기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니다. 내가 살아온 패턴이 이미 자존감이 낮은 사람의 행동이었다. 다만 자각이 늦었을 뿐이다. 그 증세 중 일부는 스스로 느리게 고쳐가는 중이고, 일부는 여전히 자각이 없는 상태였다. 혹은, 짐작했지만 외면하고 싶었던 부분도.

 

Part 2. 사랑 패턴을 보면 자존감이 보인다.
- 사랑받을 자격을 의심하는 사람들
- 자신의 가치를 부정하는 사람
- 끊임없이 묻고 확인하는 사랑
- 싸우면서 끊지 못하는 관계
- 이별이 무서워 떠나지 못하는 사랑
- 미움받을까 두려워 자신을 포장하는 사람

 이 대부분이 해당이 됐다. 과거의 나는.

 

 지금은, 누군가 나를 좋아한다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를 진실로 좋아한다면, 나를 소중하게 대해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나도 어두운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그게 뭐? 다소 비관적인 모습은 좋지 않지만, 어쨌든 그것도 나 아닌가.

 예전엔 연락이 줄곧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사람이 어떻게 하나에만 매달리나. 일을 하든 게임을 하든, 연락이 안될수도 있는거지.

 아직도 사람들에게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긴 하지만, 뭐, 지금까지도 잘 안되던게 갑자기 잘 될리도 없고.

 

 난 이런게 그냥 막연히 '애정결핍' 증세가 있어서... 라고만 생각했었다. 그게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는 생각을 못했다.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건,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가질 기회가 없었다는 것과 같았다. 그러니 나를 믿지 못하고, 나를 좋아하는 남을 믿지 못한다. 모두 자존감과 연결된 얘기였다.

 

 그리고 글 중에 가장 크게 마음에 와닿던 말은.

 

 부모는 아이가 사랑받는 존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계속 예방주사를 놓는다고 생각한다. "너 이러면 사람들이 싫어해. 외톨이가 될거야." 라며 핀잔을 준다. 그 순간에는 아이가 두려워해도 그래야 사랑스러워지려고 노력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예방주사가 아니다. 거절이라는 병균이 침입했을 때, 항체가 되어 싸워야 할 자존감을 소진시키기 때문이다. 오히려 두려움과 불안이 핵심 감정이 되어 폭발해버리고 만다. 자기 머릿속의 오류들을 수정할 기회가 날아가버리는 셈이다.

 

 그래. 그것이 내가 바로 아동 교육 관련 서적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였다. 잘못을 반복하고 싶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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