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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어스] Handal.us/[한달독서] 11기

[Day 6] 자존감 수업 - 05

by Aterilio (Jeongmee) 2020. 12. 21.

 내가 자존감이 낮다고 평가했던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생각하기에 나 자신의 가치가 크지 않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정도 연차라면 내가 생각하기에 더 잘해야 할 것 같은데,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나를 그 자체만으로 존중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쓸모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또한 그것으로써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것이 사회적인 인정일 수도 있고, 특정한 공동체에서의 인정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내 경우, 사회적인 인정에 대한 욕구가 강한 것 같다. 아니, 내 기준선에 대한 인정인가?

 주체가 누구이건 간에, 업무적인 인정이라는 부분은 부정할 수 없는 것 같다.

 

 나는 줄 곧 직업은 잘 정했다고 생각한다. 어릴 적, 적성검사에서 '연구원' 등의 결과가 나왔을 때는 인정하지 못 했다. 한 군데에 몰입하기에는 산만하던 아이였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연구원' 이라는 건 한 자리에서 결과가 나올 때 까지 진득하게 무언가를 해 내야 하지 않던가... 그걸 내가 잘 해내리라고, 나는 전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업무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연구원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개발자가 된 나도 한 번 자리에 앉으면 흐름이 진행될 때까지 쭉 개발을 하고, 그래서 좀처럼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어릴 적엔 그럴 수 있으리라 생각을 못 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누가 잠깐 휴식을 권해도 '이 것 까지만 하고요' 하고 대답한다. 작업의 단위가, 흐름이 깨지면 다시 몰입하기까지 다소 번잡하기 때문도 있지만. 결국 집중을 못하는 타입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또 있다. 나는 무엇을 만들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십자수, 종이접기 같은 수공예 계열이 취미였을 정도였다. 프로그래머도 썩 다르지 않다. 어떤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잘 해낼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그게 잘 만들어졌을 때의 그 재미가 있다. 다만 좀 높은 완성도를 추구하는 성향이 있지만, 그래서 그런 부분이 필요한 업무를 수행할 때는 시너지를 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직업을 잘 선택했다는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있다. 직업에 만족한다는 이야기는, 물론 직장에 만족한다는 이야기와는 별개지만, 다시 말하면 내 삶의 방향이 직업, 즉 직무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의 쓸모를 직무에서만 찾는다. 좀 더 잘하고 싶고, 그래서 좀 더 나은 환경이었으면 하고. 내가 생각했을 때 어느 정도 해야된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만족하지 못하니까 그 부분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 불만족을 일종의 동기로써 기능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어쩌면 핑계겠지만. 현재는 긴 번아웃을 벗어나고 있는 중이다. 그 동안의 직장생활은 말 그대로 '생명력을 갈아가며' 해왔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기대했던 부분을 채우지 못 했고, 또한 외부 평가도 나빠서. 그런 한편으로는, 그렇게 일했음에도 내 안에 남은 지식이 일천한 것 같아서. 그래서 번아웃에 빠졌다. 우선은 건강이 매우 나빠져서, 그걸 먼저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기도 하고.

 

 다만, 그런 시기가 지나고 다시 의욕적으로 진행하였을 때, 그것만으로 자존감을 채울 수 있을지는 알지 못해서. 오로지 그것만이 문제인지는 모르겠어서. 그래서 오늘도 나는, 자존감 수업을 하루치, 진행했다.

 

 책에서는 평가받는 결과보다는 과정에 중점을 두라고 했다. 어차피 평가는 현재의 것이 아니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도 없기 때문에. 지금 당장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또한 이 책을 읽은 이유가 무엇이고, 읽고 난 후의 내가 어떻게 변했으면 좋겠는지, 생각해보라고.

 

 나는.. 조금 더 현실적으로, 매일 해낼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 싶고. 현재의 내가 조금 부족하더라도, 다음 스텝을 밟아나갈 희망이 있는 내가 되고 싶다. 감정의 방향이, 의욕의 그래프가, 아래가 아닌 위로 향하도록. 좌절하기보다는 조금 더 의욕적이 되도록.

 내가 모르던 나의 모습을 책과 함께 발견하고, 이유를 알던 것과 더불어 덤덤해졌으면 좋겠다. 내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과정이 정상적이었노라고. 다만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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