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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어스] Handal.us/[한달독서] 11기

[Day 12] 자존감 수업 - 10

by Aterilio (Jeongmee) 2020. 12. 27.

 

 

 음, 한달동안 상당한 양의 독서 부채를 털어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읽는 데 생각보다 오래 걸리고 있다. 평소 습관대로 장르 문학을 읽으면서, 짬짬히 부채를 털어내고 있어서 그렇다. 종이 책이라는 단점 때문에 특수한 환경에서는 읽기 어려워서 그런 것도 있다. 아주 잠깐의 짬, 이동 중, 어두운 길 등등. 활자 중독(?)으로, 그런 환경 때문에 종이 책을 읽지 못하면 다음 타겟을 찾는다. 전자 책이 가능한 장르문학을.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진도가 나가고 있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오늘 드디어 Part 3 까지 다 읽었다.

 

 Part 1. 자존감이 왜 중요한가?

 Part 2. 사랑 패턴을 보면 자존감이 보인다.

 Part 3. 자존감이 인간 관계를 좌우한다.

 Part 4. 자존감을 방해하는 감정들

 Part 5. 자존감 회복을 위해 버려야 할 마음 습관

 Part 6. 자존감 회복을 위해 극복할 것들

 Part 7. 자존감을 끌어올리는 다섯 가지 실천

 

 Part 3 까지는, 대략적으로 나를 파악하는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읽으면서 정말 놀랐던 것은,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이렇다' 라고 표현되는 대부분의 증세를 과거의 내가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정말 놀랄 것은 바로 그 것이었다. 과거의 나. 정말 거의 모든 증세를 보였으면서도, 그 대부분이 그저 과거에만 국한되어 현재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그 기분은.. 뭐라고 해야할까. 일종의 뿌듯함? 서른이 넘도록 나이가 들면서 해 놓은 것이 없다고 여겼는데, 아니었다. 나이를 먹은 만큼 나는 많은 것이 바뀌었다. 그건, 성숙해졌다고 표현해도 될 만한 것이었다.

 

 내 마음 속에는, 부모님이라는 '무조건적인 울타리'의 존재가 희미하다. 따라서 예전에는 그 대체제를 애타게 찾았다. 그건 때로 친구였고, 지인이었으며, 연인이기도 했다. 예전에도 언급했던 '마음의 공허'를 타인이 채울 수 있다고 생각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의지할만한, 아니, 의존할만한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인지 확인하기 위해, 건방지게도 상대를 시험대에 올렸다.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런 나라도 감당할 수 있겠어?', 부끄럽게도 그런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런 상대를 찾았다고 생각하면, 일종의.. 감정적 쓰레기통으로 여겼던 것 같다. 표출되지 못한 어두운 감정을 털어놓는 것이다. 땅 끝으로 파고 들어가는 자기 혐오에 가까운 감정을, 막연하게도, 상대에게 받아달라고. 그런 나지만, 괜찮다고 말해달라고.

 단언하건데, 이건 정말 어려운 고백이다. 몇 번이고 쓸까 말까 고민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는 이유는. 혹시라도 나의 이 부끄러운 고백으로 인해 위로 받을 사람이 있을까 해서다. 당신만 그런 것이 아니라고. 누구라도 그럴 수 있다고. 스스로 긍정해주지 못한다면 별 수 있는가. 긍정해줄 누군가를 찾을 수 밖에 없다. 그 때는, 그랬다.

 하지만 언젠가, 내가 의존했던 친구가 했던 말이 나를 뒤흔들었다. '그런 감정을 상대에게 다 받아달라고 하다보면, 상대도 언젠가는 지치고 말거야.' 의존할만한 상대가 하나밖에 없을 때, 그 상대가 그렇게 지쳐버리면, 나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처음에는 그런 생각부터 들었다. 그럼 나는 대체 어떻게 해야하냐고. 어디에 의지를 해야하냐고. 의지했던 사람이 없는 상황도, 의지했던 사람이 떠나는 상황도 모두 두려운 내게 그건 정말 어려운 고민거리였다.

 벗어났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정말로 그렇다. 타인에게 의존해서는 그 굴레를 빠져나올 수가 없다. 다만, 그 과정에서 타인의 역할이 빠질수는 없다. 누군가의 긍정이 반복되면 그것은 일종의 자기 최면이 된다. 그것은, 세상이라는 지면에 아슬아슬한 실 하나를 연결한 채 발이 닿지 않는 상황에서 가까스로 지면에 발을 딛은 느낌과 가깝다. 믿을 수 없는 안정감이 생긴다. 하지만 그건 타인이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신뢰 위에 홀로 서는 것이다. 이 차이를 깨닫지 못하면 앞으로 나갈 수가 없다. 이런 부분은 아마 말로만 들어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장르 문학으로 치자면, 상위 단계의 실력을 개념으로는 알고 있어도 스스로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소용없는 것과 같다.

 

 또한 나는 혼자를 즐기는 방법을 몰랐다. 의도치 않은 고독을 경험했기에 고독을 더욱 두려워 했다. 때론 누군가와 함께인 것이 불편할 때도 있었지만, 홀로 두려워하기보다는 함께 불편한 것이 나았다. 그렇게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처음은 혼밥(혼자 밥먹기)이었다. 아니, 혼영(혼자 영화보기)이었던가. 어느 쪽이 먼저였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사실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고. 다만, 어느 순간부터 혼자 무엇을 한다는 것을 편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한 번 해보니 사실 별 게 아니란 것을 깨달은 것이다. 혼자 무엇을 한다는 것이 계속 혼자라는 의미는 아니기에, 혼자는 혼자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었다.
 나는 뭘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매우 느리다. 그래서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 본의 아니게 마지막에 눈치를 보며 급하게 식사를 마무리하는 경우가 잦다. 회사처럼 식사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경우가 특히 그렇다. 내가 늦게 먹을수록 다른 사람들의 휴식시간이 줄어드니까. 동행한 사람들이 눈치를 주는 일은 없지만, 스스로가 불편해진다. 혼자 식사한다면 그런 부분은 상관이 없다. 휴식시간이 줄어도 내 휴식시간만 해당하니까 훨씬 부담이 적다.

 혼자 영화보는 것은 또 어떤가. 갑작스럽게 보고 싶어진 영화의 예약을 지금 당장 하고 보러 가도 되고, 스낵이며 음료도 내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만큼만 구매하면 된다. 함께일 때 원하는 결정을 못한다는 뜻이 아니라 고민할 여지가 없다는 뜻이다.

 혼자 여행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진해 군항제. 그 먼 곳의 봄 축제를 그동안은 미루기만 했었다. 같이 갈 사람이 생기면 가야지, 하고.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같이 가고 싶은 사람이 없다고 가고 싶은 곳을 못가는 것은 참 비효율적이지 않은가. 하물며 시간은 다시 돌아오는 것이 아닐진대. 그 전년도, 갑자기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어 검색의 끝에 서천을 홀로 다녀왔던 것도, 그게 너무 괜찮아서 그 해 가을에 진주 유등 축제를 다녀온 것도 꽤나 만족스러웠기에 더욱 그랬다. 숙박비나 식비를 나누어 낼 수 없다는 단점을 제외하고, 혼자 다니는 여행도 꽤 나쁘지 않다. 같이 갈 시기를 조율하느라 여행 자체를 떠나지 못하는 경우도 없다. 언제든 마음이 동하면 내 몸만 챙겨 훌쩍, 다녀올 수 있는 것이다. 나중에 같이 가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그 때는 또 그 때 나름대로 즐기면 되고.

 혼자 여행까지 해보고 나면, 사실 혼자하지 못 할만한 건 딱히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지금의 나는 '자존감 수업' 책에 표현된 '자존감이 낮은 사람'의 유형에 대한 서술을 보고, '맞아, 그랬었지'라고 생각한다. '맞아, 정말로 그래!'가 아니다. 과거형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 부분이 참 신기하다. 누군가에게 의존해야만 했던 사람이 홀로서기를 하고, 고독이 두려웠던 사람이 혼자임을 나름대로 즐길 줄 알게 되었으며, 나의 어떤 면을 사랑한다 말하지는 못 하지만 나를 소중하게 여길 줄 안다. 스스로 다독이지는 못하지만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게 되었을 때 회피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가끔 어떤 부분, 예를 들면 '아픔은 과거일 뿐이다' 와 같은 글을 보면서 다시금 깨닫는 것들이 있지만. 과거를 되새기면서, 그리고 그와 달라진 현재를 돌이켜보며 내가 얼마나 많이 달라졌는가를 생각하며 놀랄 때가 더 많다.

 그러면서 또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내 자존감은 좋아지고 있었는데, 직무적 효능감을 느끼지 못한다고 그것을 자존감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자존감 수업
국내도서
저자 : 윤홍균
출판 : 심플라이프 2016.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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